[조향 노트] by Sutome Apothecary
Notes
Head: Dalmatian sage, Scotch pine
Heart: Spruce Hemlock, sandalwood Mysore, cardamom, cistus
Last: Patchouli, agarwood absolute, oak moss absolute
EPITAPHS는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지난 시간을 돌아봄과 동시에 앞으로의 시간을 마주하는 태도를 담은 작업이기도 합니다. 墨香이 20여 년에 걸쳐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아 나섰던 긴 탐구의 여정이었다면, EPITAPHS에는 곡절 많았던 이 세월을 거치며 얻은 나름의 답을 긴 호흡으로 실현해 나가고자 하는 입장과 새로운 포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EPITAPHS는 墨香의 다음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비문에 새겨진 문자’를 의미하는 EPITAPHS는, 죽은 자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생명을 부여하는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10 년을 바라보는 수토메 아포테케리는, ’문자향(文字香)‘을 키워드 삼아 불멸하길 바라는 아름다운 존재와 대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마음을 당나라에서 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깨달음을 얻은 불자들의 묘비명을 연이어 쓴 최치원( 崔致遠, 857-908?)의 마음에 빗대어 보기도 합니다. 저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어리석지만, 이런 저의 언어로라도 잊혀져서는 안 될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도록 하는 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EPITAPHS〉는 옛것을 귀하게 여기는 겸허한 손길들을 거치며 비석의 표면에 천천히 스며들었을 여러 층위의 묵향, 그리고 비옥한 흙내음과 초록빛 이끼의 냄새가 날 법한 통일신라의 묘비들을 그렸습니다. 세이지와 소나무로 고대의 절터를 덮은 무성한 풀들을, 패출리와 침향으로 선인의 지혜에 감응하고자 했던 숱한 후대인들의 손길을, 냉침법으로 추출한 이끼의 향으로 오래된 비석에 서린 초록빛 세월을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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