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Scenes #1 풍요로운 계절을 닮은 공예품
길었던 여름이 서둘러 자취를 감추었네요. 푸른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은 가을입니다. 때때로 정오의 볕은 아직 뜨겁지만 습도가 사라진 쾌적한 공기와 서늘한 그늘이 있기에 힘들지만은 않아요.
짧은 가을을 오래 기억하기 위한 장면, 《가을 단장 短長》 첫번째 이야기는 너른 가을의 평야를 떠오르게 하는 기물들입니다. 가을의 풍요로운 빛과 정경을 닮은 공예품을 모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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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짝이는 자개를 더한 칠기 포레스트 시리즈, 박수이
토양 위에서 씨앗이 움터 잎이 자라나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때때로 마음을 단단하게 해줍니다. 계절과 시간의 축에서 어김없이 순환을 이루는 자연. 곁에서 지켜보면 마음에 무언가 차오르는 것 같아 위안을 받기도 하고, 묵묵히 열매를 맺고 고요히 저무는 모습을 보며 겸허해지기도 합니다.
옻칠과 목선반 작업을 하는 공예가 박수이의 〈포레스트〉 시리즈는 이러한 밭의 정경을 모티브로 한 칠기입니다. 매일 만들고, 칠하고, 샌딩하는 일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옻칠 작업은 그 자체로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일과 닮아있어요.
작가는 화판에 결을 낼 때 작은 땅을 일구는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옻과 부드러운 흙, 물을 섞어 바르면 금세 양지의 얼굴을 띄는 표면 위로, 색칠한 조각이나 파편화한 자개를 흙에 씨를 뿌리듯 나열합니다. |
 | 씨앗이 단단한 껍질에서 나와 각자의 빛 조각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한 옻칠 트레이와 바구니는 오묘한 빛깔과 영롱한 자개의 반짝거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 칠기는 기물을 만든 뒤에도 공기와 빛 속에서 얼마간 색이 변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됩니다. 차분하면서도 독특한 색을 띈 옻칠 트레이 위로 조금씩 다르게 빛나는 자개가 지나치지 않는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어요. 은채를 입힌 다관이나 주석, 은, 황동을 소재로 한 차도구, 도자 다기와 두루 잘 어우러집니다. |
 | 동일 시리즈의 바구니는 절제된 옻칠 아래, 삼베의 결과 서정적인 색감의 자개 옻칠 장식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어울리는 원석을 핸들에 정성스레 장식하고 측면에는 실로 포인트를 더해주었어요. 작고 소중한 물건을 담아두는 오브제 바스켓으로 연출하여도 좋겠습니다. |
 | 저무는 시간의 뒷면 달접시, 김아람
아득히 먼 곳, 닿지 않는 시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김아람 작가의 〈달접시〉는 칠기의 또다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칠기입니다. 달의 표면을 모티브로 한 접시이지만 야생화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들판도 떠오릅니다. |
 | 평온한 오후의 빛과 오래된 암석의 표면을 닮은 표면 아래 은은한 반짝임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합니다. 토분으로 틀을 만들고 삼베와 겹겹히 쌓은 옻칠이 더해지며 고유한 깊이감을 갖게 된 표면. 회색의 주석분은 옻칠이 더해져 은회색과 바랜 금빛, 메마른 회색으로 보여집니다. |
 | 작은 꽃이 무리지어 핀 너른 들판, 먼 별빛을 담은 듯한 칠기이기에 한 폭의 추상화를 보듯 감상해보셔도 좋겠습니다. |
 | 한편, 김아람 작가의 목심칠기합은 오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자연의 우연한 이미지를 모티브로 한 질감이 매력적입니다. 주석분이 더해진 옻칠의 은은한 광택, 상단 덮개에는 굵은 모래와 다양한 샌딩으로 만들어진 입체적인 문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 정겨운 추수의 풍경 버들로 만든 키, 김계일
지금은 거의 사라진 버들 키. 추수가 끝난 뒤, 농가에서 곡식을 까불러 돌이나 쭉정이를 골라냈던 도구입니다. 키버들과 대를 납작하게 쪼개어 앞은 넓고 평평하게, 뒤는 좁게 엮어 만들었어요.
6.25 전쟁 이후 버들 공예를 접하고 오늘날까지 버들 공예의 맥을 이어온 김계일 작가의 키는 민가에서 과거 사용하던 것보다 소담한 멋과 정다움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옛 시절에 대한 향수를, 어떤 이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민속 공예품입니다. |
계절과 계절 사이 놓인 정류장처럼, 짧게 머물러 더욱 아쉬운 계절 가을. 여름과 겨울의 기척 없이 오롯히 가을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짧지만 우리가 만나는 풍경의 아름다움은 가볍지 않습니다. 모두 지금 이 순간만 누릴 수 있는, 매일 달라지는 빛과 바람의 계절을 마음껏 누리시는 시간 보내시길 바라요. |
✦ 《Seasonal Letters》 코너에서는 지금 이 계절 주목하고 싶은 사물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계절을 더욱 즐겁게 하고 일상의 위안이 되어주는 물건을 한 편의 편지로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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