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es of Summer #02 여름의 빛을 머금은 사물
지난 목요일은 여름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에 접어섰음을 알리는 절기 처서 處暑 였습니다. 이 무렵부터 신기하게도 밤 기온은 미세하게 낮아져, 계절의 두 얼굴을 볼 수 있어요. 낮에는 아직 여름에 머문듯하고, 저녁엔 환절기의 예감을 느낍니다.
여름의 불쾌지수를 낮추고, 감각의 즐거움을 높이기 위한 계절의 지침서 《여름의 생활》. 두번째 이야기는 〈여름의 빛을 머금은 사물〉입니다.
여름의 가장 큰 기쁨. 찬란한 여름 빛을 머금은 유리 기물과 물빛 도자 다기를 소개합니다. |
| 여름의 열과를 그린 유리 모빌 청포도, 완두콩 모빌
봄의 식재료에 긴 겨울의 혹한을 견디고 피어난 깊은 뿌리 내음이, 가을 식재료에는 뜨거운 여름 햇살을 간직한 향기가 있다면 여름 과일과 채소에는 생동하는 봄기운이 담겨있습니다.
연두빛 완두와 싱그러운 청포도의 모습을 담은 김은주 작가의 유리공예 모빌은 빛의 기울기와 실내 조도에 따라 벽에 다른 그림을 그려요. 봄의 생명력과 신록을 담은 듯한 영롱한 색감, 탐스러운 열매의 형태를 표현한 실루엣은 계속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습니다.
✢ 고운 색채의 유리 파우더를 뿌려 구워내는 작업 방식을 이용하여 오브제와 일상용품을 만드는 유리편집의 김은주 작가. 오랜 시간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활동 후, 빛을 통해 여운을 남기는 유리의 물성에 매료되어 유리공예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단어와 문장을 고르던 세심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포착한 일상과 자연의 장면이 담긴 유리 오브제에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감돕니다. |
| 찰나의 우연, 자연의 시간을 간직한 오브제 유리새
돌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유리새는 날개를 쉬게 하고 허공을 응시합니다. 곧 날아갈 것 같기도, 이제 막 쉴 곳을 찾은 것 같기도 한 모습 때문인지 율동감과 평온함이 깃들어 있어요.
새 오브제는 유리를 잘라 형태를 잇고, 고운 입자의 파우더를 뿌린 뒤 구워 만들기에 한 점 한 점 모습과 색감이 다르게 완성됩니다. 여기에 작가가 자연에서 채집한 돌 중 각각의 새에 어울리는 모양을 골라 공간을 내고 유리를 접착하여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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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와 바람, 파도가 오랜 시간 둥글게 만든, 어쩌면 인간이 헤아리기 어려운 자연의 법칙에 속한 돌의 시간을 상상해 봅니다. 찰나의 우연성이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유리 공예의 특성과 대비되는 지점이 흥미로워요.
오브제를 손 위에 잠시 올려두고 가만히 기분 좋은 감촉과 무게를 느껴보셔도 좋겠습니다. |
| 정겨운 가을 풍경이 떠오르는 유리접시
뛰노는 토끼와 보름달을 그린 사각 유리접시는 여름과 가을의 분위기가 모두 느껴집니다. 떡과 주왁, 화과자 등 찻자리에 곁들이는 다식을 담아도 좋겠고 자주 착용하는 여름 주얼리를 위한 스몰 트레이로 활용해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
| 푸른 물빛의 화사한 다관
푸른 물빛을 담은 손세은 작가의 도자 다관은 부드럽고 유순한 곡선과 넉넉한 여백을 품은 핸들, 새침하고 야무진 모양의 물대까지 감상하고 싶은 매력이 많습니다.
시원한 색감이지만 지나치게 차갑지 않아 화사한 인상이기에 금속, 나무, 패브릭 등 어떤 소재와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여름에는 밝은 색감의 편백나무 트레이나 알루미늄 소재의 트레이와, 가을과 겨울에는 황동 소재나 누비 티매트와 호흡이 좋겠습니다. |
✦ 매년 길게만 느껴지던 여름도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높은 습도와 찌는 듯한 더위가 지겨운 순간도 있었는데 문득 돌아보면 아쉬운 것들이 떠오릅니다. 남은 여름, 달고 고운 여름 과일과 아름다운 해질녘 노을 장면을 매일 누리는 날들 보내시길 바라요.
시즈널 레터는 머지 않은 때, 새로운 계절의 이야기로 다시 찾아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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